두 번째 크리스마스
영국에서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와는 집이 다르고, 혼자다. 이 박사를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인 것 같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레딩 중심지는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거렸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크리스마스 휴일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회사에서 휴일을 앞뒤 (월요일이랑 금요일) 로 하루씩 더 줘서 진짜 16일을 내리 쉰다 (세 번의 토요일과 일요일). 8월말 마지막 공휴일을 끝으로, 모든 영국 내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휴일만 바라보고 4분기를 버텨냈다. 그동안 한국은 추석도 있었고, 개천절도 있었고, 한글날도 있었는데 말이지. ‘중간 중간 조금씩 쉴래, 아니면 나중에 몰아서 쉴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사실 전자인데, 어쨌든 버텨내고 긴 휴일을 맞이 하니 이것 또한 좋긴 하네 (이게 바로 조삼모사?).
긴 휴일을 맞이 하기 전에 중요한 일들을 끝내놓아서 마음이 편하다. 물론 훨씬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답답하긴 한데, 그래도 지금 당장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 없다는 게 다행이지. 12월 중에 논문 하나 리비전 끝냈고, 다른 논문 제출한 건 피어 리뷰로 넘어갔고, 펠로우십 지원도 지난주에 했고, 당분간은 내가 연락을 해야 할 일도, 어디서 연락 올 일도 없을 듯 하다 (아니, 근데 하나같이 다 결과가 불확실한 것들 뿐이네). 그래서 최근 며칠은 요일 개념도 없이 머릿속을 텅텅 비우고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커지는 불안감 같은 건 직업병인지, 현대인병인지… 치열하게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학계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것도 있다. 학계가 나쁘다기보다는 (잘못된 부분도 당연히 있지만) 학계에서 연구자가 얻을 수 있는, 얻게 되는 보상체계가 나라는 사람과는 잘 안 맞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 이어 같은 팀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기념 점심을 같이 좋은 데서 먹었는데, 3 코스라 값이 좀 있었지만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올해 갔던 데는 크리스마스 크래커라는 게 준비되어 있어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애들한테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냥 하던 거라고. 약간 영국식 포춘 쿠키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앉은 중국인 포닥이 포춘 쿠키가 중국 본토 문화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어서 내 무지에 놀랐다. 아무튼 조금 다른 점은 안에 들어있는 쪽지가 점괘 같은 게 아니라 실없는 농담 퀴즈가 들어있다는 것 (근데 영어와 여기 문화를 잘 모르니 문제 자체를 이해 못했다…). 전채 요리였던 염소 치즈 크로켓도 맛있었고, 메인 요리였던 칠면조 로스트가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그리고 디저트를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 푸딩으로 골랐는데, 내가 생각한 그 푸딩이랑 다른 거더라 (이런 비슷한 걸 직장에서 먹는 사람들을 종종 봤던 것 같은데). 만들 때 술이 들어간다는데 술향이 좀 나는 것 같았다. 딱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경험에 의미를 두었다. 어쨌든 지금, 크리스마스 이브는 나 홀로 집이지만 영국에서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기념을 잘한 것 같다.
저녁을 어떻게 챙겨 먹어야 하나… 휴일이라 매 끼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하는 게 조금 귀찮네. 이 박사는 혼자 치킨 시켜서 맥주랑 먹은 모양이던데, 나도 그 정도는 해야 하나. 내년에는 이 박사와 고양이들과 같이 행복하게 휴일을 맞이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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