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직장 생활 1주년 | Jinseok Ryu, PhD

영국 직장 생활 1주년

오늘로 현재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근데 지금 나는 휴가를 쓰고 집에 있다. 사용하지 않은 연차 중에 최대 10일은 다음 해로 이월되는데, 내가 하도 휴가를 안 썼는지 열흘을 제외하고도 6일치 휴가를 3월 중에 다 써야 해서 급하게 어제 오늘 일단 이틀을 쉬고 있다. 나도 얼른 연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긴 했는데, 내가 호주에 있느라 2주 동안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고, 3월에는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언제 써야 하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에 PI가 내가 잘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적어도 10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반드시 쓰라고 해서 1주년을 집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휴가를 소극적으로 사용한 이유 중에 하나는 언제든 어떠한 이유로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때를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한국에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막상 남은 연차가 없거나 부족하면 난감해질 수 있으니까..? 하루 이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리고 출근 시작하고 처음 6개월을 내 나름대로 직장에 적응한다고 최대한 휴가 사용을 자제한 것도 크게 한 몫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여기 직장 생활 문화에 길들여져서인지 일해야 할 때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한 이후나 주말에는 여유롭게 푹 쉴 수 있어서(?) 휴가를 덜 쓴 걸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휴일을 길게 보내기도 했고. 쉬어서 좋긴 한데 한창 할 일 많고 바쁠 때 쉬어야 하는 게 조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호주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뒤 감기에 제대로 걸렸었다. 코로나였던가 싶기도 한데 이번에 기침이 심해서 너무 괴로웠다. 시차 때문에 몸은 몸대로 힘든데 기침하느라 목도 아프고 코도 막히고 그래서 잠을 자기도 어렵고… 아직까지 코랑 목이 살짝 불편하긴 한데, 이 박사의 지극정성 보살핌으로 거의 극복해냈다. 이 박사에게 감기가 옮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직접적인 영향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이유로 고통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고 아픈 와중에 가정적으로나 일적으로나 필수로 챙겨야 할 것들은 빠지지 않고 다 챙긴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게 많다!).
집으로 돌아온 뒤 이사를 다 마무리 했고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나 문제점들을 제외하면 새 보금자리에서의 생활을 이제 안정된 것 같다. 이전 집보다 좋은 점들도 많지만 동시에 아쉬우진 부분도 있는데, 세상살이가 그냥 그런가보다. 우선 고양이들은 이전 집보다 돌아다니는 재미가 훨씬 줄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다행히 잘 적응해서 잘 자고 잘 먹고 지낸다. 얼른 인터넷이 연결되면 좋겠는데… (어떻게 이사 하고 한 달 넘게 걸릴 수가 있냐고).
요새 영국답지 않게 날씨가 계속 맑아서 어제 이 박사랑 런던에 놀러갔다. 최근 아침 기온이 영하로 계속 낮고 일교차가 좀 큰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맑은 날씨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박사의 진두지휘 하에 타워 브릿지 (Tower Bridge) 쪽으로 갔는데, 버로우 마켓 (Borough Market) 은 월요일에 열지 않아서 구경은 못했지만 대신 그 주변 구경을 더 잘할 수 있었다. (양이 적고 그에 비해 비싼) 지중해식 음식을 점심으로 먹고, 리스본의 맛이라는 에그타르트와 피스타치오 기반의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타워 브릿지를 보러갔는데, 날씨도 맑고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빅 벤 (Big Ben) 을 보러갔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결국 1년만에 둘이 날씨가 맑을 때 런던 구경을 했다. 영국 날씨 쉽지 않아.
다음 사계절은 무난무난했으면 좋겠으면서도, 무난무난하다는 게 그만큼 큰 발전이나 성취도 없을 수 있다는 의미할 수도 있어서 마음이 복잡하네. 다른 거 다 떠나서 무엇보다 우리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야지.

조향장치 소음 해결을 위해 런던의 한 매장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며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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