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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에게 [To me at tw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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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여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밤을 새우고 새벽 일찍 운전 면허 도로 연수를 받으러 다니던 그 때의 나에게, “14년 뒤에 너는 아내와 고양이 둘과 영국에서 살 게 될 거야” 라고 얘기한다면 과연 믿을까. (“근데 네 영어는 지금보다 나아진 게 없어”) 알맹이 하나없는 빈 껍데기와 같았던, 그리고 그걸 숨기기 위해 가시로 뒤덮었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가고 싶다거나 후회가 될 정도는 아니다. 다행히 내가 타고난 부분 중 우수하다고 평가 받을 만한 것들이 있었고, 나는 그래도 그것들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구체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이런 것들이라도 타고났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나의 자존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분명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고, 이십대 중반과 후반에 걸쳐 직접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는 실패없이 성취를 이뤄나가면서 비어있던 내면을 나만의 가치관으로 채워나갔던 것 같다 - 옳고 그름의 판단, (정치관을 포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적정한 거리와 시야 형성, 인간 관계에 대한 주의와 회의 등.
        이십대 동안 재생지와 같던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기워가며 채워놨고, 삼십대에 들어서는 그것들이 곧 나요, 내 삶의 모든 부분의 기초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학위를 마치고, 그 전과 다른 고차원의 (더 높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많이 다르다에 더 가깝긴 하지만) 인간 관계들을 형성하고, 나의 확립된 가치관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면서 깨달은 건 내 가치관에 내가 잡아먹히지 않게 항상 주의해야 한다는 것. 눈 뜨고도 코 베일 수 있는 험난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주장과 가치관을 관철시켜야 할 때가 있지만 내가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할 것 - 머리로는 생각해도 매순간 유연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게 또 어려운 점이 나만 주의하면 될 게 아니라 상대도 (사람이든 체제든) 같이 주의를 했을 때 갈등의 소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 운전과 비슷하달까, 운전은 나만 조심히 한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닌 것처럼.
        이념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남녀 간 갈등이 이토록 극대화된 때가 있었을까 (일단 내 인생 기간 내에서는 최악인 것 같다). 그런 갈등 상황에서 나 또한 원하든 원치 않든, 주체로서 혹은 객체로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여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인식들이 때때로 나를 혼란시킬 때가 많다. 남자로서, 삼십대로서, 연구자로서 다른 이들 혹은 체제로부터 느껴지는 여러 가지 불합리함들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정당한지, 내 편협한 가치관이 혹시 나를 좀먹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하면서도, 그런 고민들을 전혀 하지 않는 아무개들이 존재한다 것에 때때로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신기한 건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다시 말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그런 갈등들이 닭장 속 싸움처럼 보인다랄까. 영국의 국가 체제나 사회가 한국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 그도 그럴 게 나는 영국에 대해 아는 게 아직도 거의 없다, 영국 사람들은 축구를 진짜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최근 노동당이 이겼다는 것 빼고는 - 거리를 두니 조금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러기에 좋은 점도 추악한 점도 더 잘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에 대한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고민과 객관화의 과정들이 나를 조금 더 강하지만 유연한, 더 건강한 정신과 보다 나은 인간성을 갖출 수 있게 해주길 바라고 있다. 물론 나도 이런 식의 건설적인 생각에 따른 실제적인 실천이 이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는 않으나 생각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를, 할 수 있기를,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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